< 수다가 좋다 :: 용돈대신 수학,영어학원에 보내주겠다는 아들 노무현 대통령 배너

수다가 좋다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은 많은 책임감을 요한다. 그냥 낳아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커서 사회의 일원으로 잘 살 수 있기를, 낙오자가 되지 않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며 엄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물론, 이해를 바라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웃음에서 행복을 찾고 아이의 발전에 흐믓할 수 있는 것이 또 부모다.

지인 A는 아들만 셋이다. 첫째는 중학생이고 둘째, 셋째는 쌍둥이로 초등학교 4학년이다. 일란성 쌍둥이라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 아무리 가르쳐 줘도 타인이 보기엔 혼동스러울 정도로 닮았다. 근데, 일란성임에도 불구하고 쌍둥이 형제는 아주 많이 다르다.
형은 아주 세심하고 예민하고 날카로운 반면 동생은 모든지 넉넉하게 넘어가는 편이다. 그래서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갈 일이 있으면 A는 형 반을 먼저 가고 동생 반을 나중에 간다. 그렇게 다른 쌍둥이가 학업에도 차이가 난다. 동생은 여유가 많고 스트레스가 적은 반면 형은 여유가 없고 스트레스를 안고 가는 편이라 성적이 좋다. 성적 뿐 아니라 말하는 것도 부들부들 넘어가는 동생이랑 다르게 형은 까칠하고 예쁘게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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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만 셋, 그것도 쌍둥이를 키우며 너무 힘들었던 A가 쌍둥이들한테 그랬다.
"나중에 너희들 애는 너희들이 키워, 엄마한테 봐달라고 하지마. 엄마 힘들어서 못해."
"그럼, 엄마가 우리 할머니한테 맡긴 만큼만 봐주면 되겠다."
쌍둥이 형이 말하는 뽐새가 뭐, 이런 식이다.
"뭐? 그래, 날짜 계산해서 할머니한테 니들 맡긴 만큼 봐 줄께."
지들 키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은 못해줄 망정 할머니한테 맡긴 만큼이라도 봐달라는 쌍둥이 형이 많이 섭섭했다.

아이 셋을 키우고 지금 한창 사교육비에 치어 힘들 때다. 얼마나 힘들게 가르치는지 연설(?)하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마무리 뒤에 한마디 떠봤다.
"엄마가 이렇게 니들 가르치느라 나중에 늙어서 돈 없으면 어쩌지? 니들 월급 받는 날 엄마가 찾아가야겠다. 그럼 엄마 용돈 줄꺼지?"
그랬더니 쌍둥이 동생이 그랬다.
"에이, 엄마 용돈 주면 내가 쓸게 없잖어."
그 말도 섭섭했는데 쌍둥이 형의 말은 더했다.
"아니, 엄마도 우리 용돈 안주잖아. 그 대신에 엄마도 수학학원, 영어학원 보내 줄께. 싫다는데도 엄마는 우리 학원 보내잖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란 말인가. 할머니 되서 수학학원, 영어학원에 다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을 듯 하다. 하지만, 얼마나 다니기 싫었으면 얼마나 하기 싫었으면 나중에 엄마한테 똑같이 갚아주겠다는 것인지...한편으로 공부에 치인 아이가 안됐다 싶으면서도 어쩜 이렇게 엄마 마음을 몰라줄까 싶은 배신감이 더 컸다.

자식 덕을 보겠다는 것은 아주 옛날 이야기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보다는 '콩 심은데 콩난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 된 현실에 아이들의 말은 어쩌면 진심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듣는 엄마의 입장에서 달갑지 않은 말이다. 아이들이 잘 커서 지 앞가림 잘하고 살기만 해도 그저 고맙겠다 싶은 마음이면서도 무슨 덕을 보겠다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서도 이렇게 배신감 확 밀려오는 말엔 절망스럽기도 하다.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A의 말에 한참 웃기는 했지만 결코 뒷맛은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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